파울 지엘린스키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이름 | 파울 지엘린스키[1] (Paul Zielinski) |
생년월일 | |
사망년월일 | |
국적 | |
출신지 | |
포지션 | 레프트 하프백 |
신체조건 | 172cm / 74kg |
등번호 | -[2] |
소속팀 | SV 유니온 함본 (1930-1939) LSV 마르커슈도르프 (1939-1945) 라피드 카셀 (1945-1946) SV 유니온 함본 (1946-1948) |
국가대표 | 15경기 / 0골 (1934-1936) |
감독 | SV 유니온 함본 (1946-1948) 1. FC 보홀트 (1960-1962) |
1. 생애[3] [편집]
1.1. 선수 생활 [편집]
1.1.1. 클럽 [편집]
1.1.2. 국가대표 [편집]
함본이 비록 군소클럽이었지만 지엘린스키의 활약을 눈여겨 본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대표팀 감독 오토 네르츠였다. 함본은 지엘린스키의 활약을 바탕으로 1934년 가울리가 니더라인에 올라갔는데 이 때에 네르츠가 지엘린스키를 눈독에 들였다. 지엘린스키는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더비 카운티와의 연습 경기 이후 바로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당시 지엘린스키는 A매치 경험이 전혀 없는 신예였지만 레프트 하프백으로 4경기에 모두 출전하며 독일을 3위로 이끌었다.[6]
그 이후 지엘린스키는 올림픽을 대비하는 연습 경기에는 참가했지만 최종 명단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이 당시 소속팀 함본이 베치르크스리가로 강등되었기 때문이었다. 지엘린스키의 15번째이자 마지막 A매치는 9월 룩셈부르크와의 시합이었고 대표팀에서 지엘린스키의 자리는 알빈 키칭어로 대체되었다.
지엘린스키는 국가대표팀 외에도 니더라인 주 대표로 시합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 이후 지엘린스키는 올림픽을 대비하는 연습 경기에는 참가했지만 최종 명단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이 당시 소속팀 함본이 베치르크스리가로 강등되었기 때문이었다. 지엘린스키의 15번째이자 마지막 A매치는 9월 룩셈부르크와의 시합이었고 대표팀에서 지엘린스키의 자리는 알빈 키칭어로 대체되었다.
지엘린스키는 국가대표팀 외에도 니더라인 주 대표로 시합에 참가하기도 했다.
1.2. 감독 생활 [편집]
선수에서 은퇴한 이후에는 감독, 그 이후에는 스포츠 인스트럭터 일을 하였다.
2. 수상 [편집]
2.1. 클럽 [편집]
- 가울리가 니더도나우 우승 2회: 1941-42, 1942-43(LSV 마르커슈도르프)
2.2. 국가대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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